꿈과 현실 2

봄 기운이 만연하다.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에 몸이 나른하여 축 처진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지 춘곤증으로 약간 졸음이 오는 것 같아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풀냄새 꽃향기가 따뜻하고 약간의 후텁지근한 바람에 뭍혀 코끝에서 맴돌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즐기고 있자니 자연의 향은 역시나 청량제였다.
양쪽 산 허리를 가로지르고 있는 기찻길 교각 밑으로 꼬블꼬블한 내리막길을 지나고 있어 조심스러웠다.
바짝 긴장하여 내리막길을 무사히 통과하니 약 100여 미터의 곧은 길위로 조금 전에 보았던 그 기찻길이 연결되어 있고, 역시 교각위로 양 쪽 산을 버팀목으로 하여 기찻길이 가로로 길게 놓여져 있다.
저 기찾길을 지나면 도로는 오른 쪽으로 휘어져 산 허리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는 약간의 오르막길이다.
졸음이 가신지라 창문을 다시 올리고 곧게 펼쳐진 길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 빨간 색으로 길게 띠를 두른 여객 기차가 오른 쪽 산에서 모습을 보였다.
마치 녹색의 자연을 알록달록한 물고기가 수를 놓는 것 같이 아름답다. 너무 차분하고 평온해 오히려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기관차 뒤를 이어 여객 차량이 서너대 정도 지나가는 순간 어디선가 콰꽝!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지진이 난 것 처럼 땅이 울리는 진동을 느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석연치 않은 느낌이다. 쾅 소리와 진동에 약간 긴장하여 양손으로 운전대를 바짝 거머쥐었다.
◐ choice 1
기찻길을 통과하기 몇십미터 전 순식간에 기차는 크게 흔들리고 덜컹거리더니
갑자기 잿빛 연기를 위로 뿜으며 꼬리 두서너 대가 선로를 탈선하여 온갖 무서운 소리와 뿌연 연기를 일으키며 달리는 내 차 방향 앞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끌려가고 있다.
이대로 계속 직진하여 가다가는 탈선한 열차가 내차 지붕 위로 바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할 긴박함이다. 그 짧은 순간, '차를 세우고 후진할 것인가', 아니면 '가속 페달을 세게 밟아 빨리 지나가야 하나' 기로에 있다.
떨어지는 기차는 폭풍에 내 몰려 부서지며 밀려드는 파도같이 기찻길 난간을 밀어내며 내 앞으로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있는 힘껏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밟은채 머리를 최대한 운전대 밑으로 숨기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겼다.
몇 초도 안되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있을까. 떨어지는 기차와 피하려는 내 차가 거의 맞닿을 순간인 듯 차 지붕위에서 쇠붙이끼리 부딪치는 충격이 느껴지며,
소름끼치는 소리에 겁에 질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곧장 차는 길위에서 미끄러지며 교각을 들이받고 멈춰섰다.
순간 정신을 차리니 무사하구나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차 바깥으로 나와 주위를 살폈다.
기차는 서 너대의 차량이 탈선하여 산밑으로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다쳤을텐데 큰일이다.
주위에는 나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은다.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고 상황을 신고할 생각조차 못하고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 급히 걸었다.
잠시 후면 조금 전에 지나왔던 기찻길 밑으로 나 있는 꼬블꼬블한 내리막길,
지금 보니 많이 가파른 오르막길로 몇 대의 차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
거기를 지나면 집들이 몇채 정도 있었던 생각이나 일단 거기에 가야만 했다.
가로지른 기찻길 밑을 지나자니 몸도 지치고 힘겨워 교각에 기대어 잠시 쉬고 있는데 또 다시 쾅!쾅!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위 쪽을 올려다 보니 조금전 기차에 깔려 죽을 뻔 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그 굉음은 시커멓게 보이는 아주 큰 대형 트럭이 전복되어 내리막길 이쪽 저쪽으로 부딪치며 굴러떨어져 내려오는 소리였다.
야수같은 그 거대한 쇳덩이는 산 중턱에서 길옆 좌우 측으로 부딪치며 반동을 받아 빠른 속도로 굴러 떨어지면서
급 커브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는 자그마한 승용차들을 야수의 발톱으로 할퀴어 상처내듯이 날려버리고 찌그러뜨리며 내 쪽으로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 choice 2
이번에도 또 목숨을 건 선택을 해야 했다. 뒤로 도망치든지 아니면 산으로 올라야 하나 황당하지만 긴박한 상황이다.
산을 오르기에는 너무 가파른데다 가림막이 있어 어려울 것 같고, 뒤로 후퇴하자니 몸은 지쳐 있어 저 놈보다 빨리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진퇴양난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한 상황, 놈이 거의 나를 덮칠 거리에까지 와 있다.
나는 재빨리 산밑에 겨우 붙어 튀어나와 있는 교각 옆쪽으로 몸을 피해 최대한 몸을 작게하여 숨었다.
그 무섭고 큰 쇳덩어리는 반대쪽에서 튕그러지며 내 쪽으로 무섭게 날라와 교각을 들이받고 멈췄다.
그나마 교각 뒷쪽 피할 곳이 있어 천만 다행이었다. 오늘은 운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하여튼 내 인생 최악의 날임이 분명하다.
정신을 차리고 나와 보니 시커먼 그 놈은 만신창이가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뒷 바퀴 한개가 겨우 바퀴 축에 메달려 타이어가 찢어진채 힘겹게 돌고 있다.
그 무지한 놈에 짓밟히고 치인 차들은 여기저기에 나동그라져 있는데 다친 사람들이 차에서 겨우 나와 신음소리를 내며 도와 달라고 소리낸다.
그 다친 사람들 중에는 얼굴이 익는 사람이 피를 흘리며 차에 기대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나 내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잠시 후 경찰차 몇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줄지어 오고 뒤를 이어 구급차, 소방차도 보인다. 나는 그제서야 다친 데가 있는지 내 몸을 훑어 보았다.
다행히도 손등 살갗만 살짝 벗겨져 약간의 피가 맺혀 있는 상태를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차에서 환자들을 부축이며 끌어내기 분주한 가운데 한 경찰관이 내 쪽으로 다가 온다.
어디 다친데는 없는지 재차 묻는다. '나는 손등에서 피만 조금 나니 괜찮다'.
다른 사람을 돌봐달라고 했는데도 재차 빨리 병원으로 같이 가야겠다고 경찰차에 나를 태우려고 한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 걱정말라고 애써 뿌리쳤지만 경찰관은 막무가내였다.
때마침 뒷 쪽에서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어 그 경찰관은 그 사람쪽으로 달려가면서 빨리 올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여기는 모두 다친 사람만 있고 당신이 이 사건을 목격했으니 경찰서에 가서 진술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뭔가 음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조금은 무섭고 두려운 생각에 상황을 조금 지켜보다 시간이 좀 흘러 그곳을 빠져 나와 집으로 갔다.
◐ choice 3
두번이나 큰 위기를 넘겼는데 안좋은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됐다.
오늘은 항상 조심 조심해야겠다 생각하고 사무실을 가려고 지하2층 주차장으로 갔다.
어제 차에 실어 놓은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을 갈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좀 늦어 그냥 차를 타고 가야 하나 고민되어 망설였다.
어젯밤에 차로 인해 뒤숭숭했으니 자전거로 가야겠다 선택했다.
'조심조심'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 타야지 다짐하고 차 뒷문을 열고 자전거를 꺼내려고 하는데
뒷 자석 앞으로 걸쳐 놓은 자전거 앞 바퀴가 왼쪽 좌석에 걸려 힘주어 빼려고 해도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허리를 숙여 뒷좌석에 엎드린 채 자전거 앞바퀴를 힘겹게 들어올리려는 순간 자전거가 옆으로 쓰러지며 내 머리와 등위로 무겁게 넘어졌다.
나는 자전거에 깔려 머리와 등이 자전거 앞 바퀴에 눌리키며 아픔을 느껴 잠시 그대로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자전거에 깔려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황당한 상황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 그렇게 자전거 밑에서 한참을 소리내여 웃었다.
그렇게 조심조심하자고 마음먹었건만, "안 좋은 꿈은 현실이 된다니까" 또 웃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천만다행이었다. 그날 나는 하루종일 조심조심 신중했고 또 신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