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직원 구함
1. 방황
최근 며칠을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중앙시장 거리를 터덜터덜 걸으며 상점 안을 기웃 기웃 거린다.
사실이지 낯설은 이런 행동은 가게 안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니라 직원구함, 아르바이트 구함이라고 쓰여 있는 구직 광고가 상점 입구에 혹시나 붙어 있는지 살펴보며 거리를 헤메는 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지라 2년여 남짓 지나면 대한민국 성인 남자라면 그 누구일지라도 피해가지 못할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사실 지독히 운이 좋아 군 면제를 받았다한들 나중에 군대 다녀온 여러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편안한 생활을 한 댓가에 대한 적당한 수모를 견뎌야하니 말이다.
시장 거리를 거의 2시간여 이상을 헤매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갈 때쯤 그 인근에서는 제일 크다고 생각되는 슈퍼마켓 입구에
'남자 직원 구함'이란 글이 흰 종이 위에 삐뚤삐뚤 개발새발 쓰여 있는 문구를 발견하여 상점 안을 들여다 보았다.
바쁜 시장통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큰 가게였지만 주인인 듯한 사장님은 착하다 못해 어수룩하기까지해 보였다. 쑥스러워 문을 박차고 들어가지를 못했다.
나는 그저 '직원구함'이 붙어 있는 저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장님 사람구한다고 해서 왔습니다.' 이 말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열여덟 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처음으로 부닥친 구직활동은 소심한 성격의 나로서는 그리 쉽고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조금이라도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군대 가기 전까지 아무 일이나 해보고 싶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심 호흡을 한 뒤 수퍼 문을 열었다. 역시 그 곳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모든 것이 냉냉했다.
"사장님, 직원 구한다고 해서 일해보고 싶어 왔습니다."
사춘기 중학생이었던 시절 사람들이 많이 있던 좁은 공간 버스안에서 버스안내양 누나에게 하염없이 소심하게 말을 걸었던(2023.06.13 - [창작] - 클래식한 이야기)
그 때보다는 좀 더 조리있고 차분하고 어른스럽게 나의 말을 전달하였던 것 같았지만 어쩐지 이번에도 후회스럽다.
수퍼 사장님은 귀를 살짝 덮은 흰 색의 새치 머리때문인지 짙은 검은 색의 두꺼운 안경테가 잘 어울려 보였다.
그 인자해 보이는 사장님은 어린 시절 사춘기였던 어수룩한 한 소년의 말을 잘 알아듣고 답을 해주었던
그 버스안내양 누나처럼 다행이도 내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고개를 약간 숙이더니 안경 너머로 지긋이 바라보았다.
조금 긴장되고 초조한 이 순간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수없이 절박하고 간절하게 겪게 될 일에 대한 예행 연습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자네 문 밖에 나가서 저기 세워 둔 자전거 탈 수 있나 보게나" 나는 사장님의 예기치 못한 주문에 좀 당황했으나 이 곳에서 일하려면 당연히 부딪쳐야 하는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사장님을 따라 문 밖으로 나가 자전거를 잡았다. 어렸을 적에 당시 국민학교 2학년이나 3학년 되던 해 자전거를 배운 적이 있다.
배웠다기 보다 어디에서 났는지 모르지만 집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를 몰래 끌고 나가 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자전거에 비해 몸집이 작아서 양손으로 핸들을 겨우 잡고 한쪽 발로 페달을 밟고 올라서고 다른 발로 땅 바닦을 밀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하다
좀 익숙해지면 한쪽발을 자전거 몸 사이를 통해 또 다른 페달에 올려놓고 몸무게를 이용해 양발을 위 아래로 힘을 주어 내 딛으면서 며칠 동안에 자전거를 배운 것이 너무 신기하고 대견했던 기억이 난다.
2. 면접
지금은 면접관인 슈퍼 사장님이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자전거를 타야하는 시험이니 많이 긴장이 됐다.
양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옛날에 배우던 자전거, 그리고 학교다닐 때 통학용으로 타고 다녔던 자전거보다 이 놈이 좀 컸던지 양 손을 넓게 벌려야 핸들에 손이 닿았다.
브레이크 손잡이도 손을 크게 펴야 겨우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짐을 실어야 해서인지 안장 뒤쪽으로 설치된 짐받이가 머리 높이보다 훨씬 위로 솟아 있다.
순간 그냥 자전거가 아니라 커다랗고 거친 검은색의 제므시 같은 짐차처럼 느껴졌다.
이 것을 내가 감당하고 사장님이 만족할만하게 잘 탈수 있을까, 순간 당황하여 얼굴에서 열이 확 올랐다.
나는 양 손을 최대한 넓게 벌려 거칠고 묵직한 놈의 핸들을 꽉 웅켜쥐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좀 빠르게 내달리며 놈에게 가까스로 올라타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시장 한복판이라 길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길이 더 좁아 보였다.
사람들을 피하느라 속력이 떨어져서 인지 출발한지 얼마 못가서 지금 생각에 한 10여 미터로 못간 것 같다.
자전거는 비틀비틀 거렸고 나는 그런 야속한 그 놈을 제어할 수 없어 한쪽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까짓 짐 자전거 하나 제대로 못타다니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까지 하였다.
있는 힘을 다해 놈을 겨우 일으켜 세워 끌고 패전병처럼 축 처져서 돌아왔다.
이 한심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인자했던 수퍼 사장님은 짐 자전거를 겨우 세워 놓고 돌아선 나를 지긋이 보시고
"이봐, 쉬운 일이 없지? 이 곳 일은 자네한테 맞지 않은 것 같네" 타이르듯이 말씀을 하시고 상점 안으로 들어가셨다. 아무 짐도 싣지 않은 빈 자전거였다.
짐칸 위에 음료수 한짝이라도 실려 있었으면 대형사고였을 것이다.
아마도 사장님은 처음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어설프게 말을 꺼냈을 때부터 결과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조금 전 쓰러지는 자전거를 감당 못했을 때보다 더 얼굴이 화끈거렸고 사회에 첫 발을 내 딛으려 한 미숙한 한 청춘의 자존심은 작은 상처를 입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이 사람들 사이를 헤처 그곳을 빠져 나왔다.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일하려고 하는 곳이 어디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 곳에서 일하게 되면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사전에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내 인생 처음으로 구직을 위한 면접은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하지만 그 소중한 경험은 이 후에 펼쳐지는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도 몇 번의 비슷한 경험은 계속되었고 그런 정제되지 않은 하찮고 작은 어설픈 경험들이 쌓여서 지금까지 내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