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날의 기억
그 때 그 사건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누군가가 오롯이 피해 가지 못한 것은 단지 운명이란 놈이 장난질을 치는게 분명하다.
2018년 9월 29일 토요일은 그 끔찍한 사건이 터지기 바로 전날이었다.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천에 있는 친구가 오랜만에 놀러 왔으니 시간 허락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한잔하기로 했다.
멀리 흩어져 있던 벗을 만난지라 모두들 기분이 좋아 늦은밤까지 술이 거나했다.
애주가인 나는 밤늦게까지 술을 자주 먹기는 하지만 그날따라 좋은 친구들을 만나 주량을 약간은 넘어서인지 속이 거북하여 새벽녘에 몇번이나 잠에서 깨곤했다.
오전 8시쯤 되었을까 아침 했살은 아파트 앞동 옥상에 가려 쪼개져 손바닥만한 볕이었지만
가을날의 아침 햇살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따뜻한 양의 빛이 내가 자는방 8층 높이의 창을 통해 스며들어왔다.
그 볕은 밤'이슬'로 인해 초췌하고 흐릿한 정신으로 비몽사몽인 나를 귀찮게 했다.
부시시한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집어들어 시간을 봤다. 9월 30일 아침 8시 반이 조금 넘었다.
카톡, 문자, 그 밖에 알림이 몇개 보였고 몇통의 부재중 전화도 표시되어 있었다.
귀찮아서 확인 처리하고 다시 눕기를 몇번이나 반복했다. 그런데 전화는 계속해서 걸려왔다.
순간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감지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겨우 일어나 침대 끝에 걸터 앉아 핸드폰을 열었다.
4통이었는지 더 많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전화번호가 다급하다는 듯 여러번 찍혀 있었다.
숙직실과 현장 사무실 전화번호가 번갈아가며 표시됐다. 숙직실로 먼저 전화를 했다.
"경로장애인과 최아무개입니다. 전화가 들어 와 있는데 무슨 일이신가요?"
"예, 오창동에서 민원전화가 많이 들어옵니다." "무슨 일인가요?"
"예, 잘은 모르겠는데, 화장장에서 검은 재가 날아왔는데... 일단 담당자가 나와 보라고 주민들이 난리입니다."
"예, 알겠어요, 그 쪽에 한번 전화해 볼께요."
그 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얘기를 들은 것 같아 별 문제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안심했다.
급히 현장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선배님, 무슨일 있나요? 숙직실에서도 계속 전화가 오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선배님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었고 착하신 성격을 지닌 분이었다.
"최계장, 여기 일이 좀 생긴 것 같아, 화장장에서 시커먼 재 같은 게 굴뚝에서 많이 터져나와 앞에 있는 아파트로 번졌는지 민원이 심각한 것 같아!"
"예..? 전에도 이같은 일이 있었나요?"
"있었지만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었던 거 같은데..."
"예, 일단 알겠습니다. 빨리 나가보겠습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거기가 어디란 말인가 1950년에 지어져 지금은 아주 오래되고 낡은 화장장 아니던가, 그런 곳에서 일어난 일이니 불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몇번의 심호흡 동안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 먼저 보고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p과장님한테 전화했다.
"과장님, 화장장에서 재가 날라 인근 아파트를 덮쳤다고 합니다. 지금 아파트 주민들한테 전화도 많이 오고, 숙직실로도 전화가 많이 간다고 합니다."
"뭐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
"어떻게 하실겁니까, 저는 지금 나가보려고 하는데요."
"어쩌지? 일이 있어 어디 가기로 했는데... 지금 내 일이 중요한 게 아니겠지, 최계장 먼저 현장에 나가 보고, 나는 곧 준비하고 나갈 께!."
그녀도 이 사건이 보통일이 아닌 것을 느낀 것 같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후 씻지도 못한 채 대충 머리에 물기를 묻혀 정리하고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아무 생각없이 혼미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던 적이 있었던가, 내 정신이 아니었다.
전화가 걸려온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다. 이 지역은 건립된지 오래된 아파트로 여러 단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왠지 불안한 느낌은 점점 더해지고 무거워진다.
사람들이 몇 명씩 모여 주차된 자동차들 앞에서 흥분된 듯 어수선하게 떠들썩하다.
나는 주차를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저는 시청에서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그래요? 이거 좀 보세요! 이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기 보세요"
차량들을 가리키며 그 중에 제일 비싼 차주였는지 아니면 성미가 제일 급한 사람이었는지 먼저 나서서 나를 향해 바쁜 손짓과 함께 격양된 목소리를 낸다.
또 다른 사람이 말을 이어 보탠다.
"시청에서 오셨다구요? 잘됐네요.. "
이 아파트 관리소장이라고 바쁘게 소개한 사람은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 말을 억누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이런 일 말이죠, 그 전에도 있었는데 그 때는 이렇게 큰 일은 아니었어요, 한 두 분만 얘기해서 별일이 아니다 싶어 그냥 넘어갔던 일이 있었지"
전에도 직원들한테 들은 얘기라 그런 사소한 일은 자주 있었을 거라 생각한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사건이 심각해요, 아파트 전체로 다 퍼지고 이 차들 뿐만이 아니에요, 아파트 베란다에도 들어왔다는 전화가 우리 사무실에도 빗발칩니다. 사태가 심각합니다." 순간 아찔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하나, 수습을 위해서 무엇부터 해야하나 이제는 두려움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걱정으로 막막하기만 했다.
앞으로 닥칠 엄청난 일이 눈에 보이는 듯 머릿속을 한컷 한컷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과장님이 급하게 도착했다. 그 또한 부시시한 얼굴에 핸드폰만 들고 달려오는 모습이 나와 같은 처지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아파트 주민에 둘러쌓였고 그 성난 사람들의 성토는 나약해져 쪼그라든 우리의 심장을 파고들어 찢어놓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어느 화창한 일요일 단지 직장인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망친 것만으로 끝이 아닌
어둡고 거칠고 무서운 긴 터널을 맨몸으로 홀로 걸어 지나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짧지 않음을 알리는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2. 전말(顚末)
이 사건을 다시 요약해 보면 이렇다. 1950년도에 지어진 노후된 화장장의 화로 두 기중 한개의 여과기가 고장나
그 여과기를 통과하지 못한 분진(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의 그을음으로 판단)이 한꺼번에 솟아 나와 바람을 타고 인근 아파트 단지는 물론
몇백미터까지 날아가 아파트 건물과 수천의 차량, 어린이 놀이터, 상가 등에 깨알같은 시커먼 분진이 내려 앉은 피해가 발생.
화장할 때 사용하는 원료인 경유 그을음이라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화장장에서 날아온 것이니만큼 보통의 먼지와는 달라 깨름직하다고 여겨 큰 파장이 일어났던 사건이다.
3. 참담(慘澹)
1시간여 정도 지났을 무렵 예상대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신고정신 투절하고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적지 않은 아파트 주민이 여기 저기 신고했으리라 생각됐다.
사건이 사건인지라 예상보다 빨리 뉴스 거리가 되었다.
3개의 지역방송국 및 2개의 지역 신문사는 물론이고 주간신문사까지 번갈아가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취재에 열을 올렸으며, 경찰서와 지구대 뿐만아니라,
경찰정보과와 지역의원이 돌아가며 찾아왔다. 언론사는 주민에 대한 알권리, 경찰은 상황대처, 지역의원은 상황파악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우리는 엄청나고 큰 사건에 휘말려 온 정신이 나간 듯 했고, 이런 것이 아비귀환이라면 그 때가 맞았을 것이다.
그날은 내 생애 가장 길고 길었던 하루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맡은 업무에서 일어난 사건인지라 누구를 탓할 것인가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제부터 할일은 사건을 최대한 빨리 문제를 최소화해서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정신없이 사건현장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불려다녔다.
그렇게 힘들고 긴 하루였던 10월 초가을 첫번째 일요일이 저물었다. 우리 부서는 비상이 걸려 전 직원이 불려나왔는데 미안하기도 했다.
지친 몸을 겨우 추스려 우리는 사무실로 복귀했다. 일요일이었지만 사무실 전화통은 불이났다.
얼핏 전화기 모니터를 보니 부재중 전화 수가 몇 백통이 넘게 찍혀 있었다.
앞으로 며칠 아니 몇달이 될지도 모를 민원 전화를 생각하니 그야말로 앞이 캄캄해졌다.
대책회의를 힘들게 마치고 일단 귀가했다. 다음날부터 민원에 시달리며 처리해야 할 일을 짐작하니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4. 사과(謝過)
그날 그 사건으로 피해를 보신 주민들에게는 당시 업무 담당자로 사과를 드려야 마땅한 일이겠다.
'이른 아침 잔치에 참석하려고 잘 차려입은 옷이 검은 분진가루가 내려앉아 얼룩투성이가 되었던 분',
'아침 운동 등 야외 활동 중에 직접 몸에 맞아 피해를 입으신 많은 분들',
'친정 어머니가 담가주신 고추장 된장이 베란다에서 뚜껑이 열린 채 분진을 맞는 피해를 당하신 분'
또한 '걸려있던 옷가지와 식물, 화분들에 피해를 보신분', '고급 외제 흰색 승용차가 검은 재로 인해 색상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던 차주분'과
'주차되었던 수많은 피해차량들' 그리고 '텃밭에 심었던 배추, 상추 밭 피해와 식당운영을 위해 널어놓았던 고추 피해를 보신 분'
그 외 더 말할 것도 없이 너무 많은 주민들께서 피해를 입었다.
뿐만 아니라 '화장장 고장으로 인해 시설 보수기간 우리 지역이 아닌 외지 화장장을 힘들게 찾아 어렵게 장례를 치러야 했던 분들' 등
그 당시 화장장 분진 피해를 당하신 모든 분들께 유감을 전화고 싶다.
내가 사는 곳에는 절대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님비현상으로 기피 시설인 노후된 화장장을 하루빨리 이전하지 못한 시청의 잘못이 우선이겠지만,
담당자로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감수해야 했다. 회상하며 이 기회를 빌려 다시한번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5. 조사(調査)
사건이 있은 다음날부터 위에 열거한 피해주민들부터 모두 찾아가 피해조사를 했다.
여기저기에서 피해를 입었으니 나와 확인해 달라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집집마다 찾아가서 사과하고 조사하고 하루 종일 불려 다니느라 몸은 지칠대로 지쳤다.
사실 지친 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피해조사 확인 후 보상 방법의 문제였다.
무엇을 어떻게 보상해야 한단 말인가, 분진이 아파트 집안으로 날라와 방안과 베란다에 묻은 것은 집주인이 청소를 하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널어놓은 빨래와 화분에 분진이 묻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기서 날라온 분진을 맞은 빨래를 세탁해서 입으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식물 다육이도 마찬가지 그냥 물로 씻어서 키우라고 어떻게 말을 하겠나,
더구나 친정 엄마가 보내주신 된장, 고추장 장독안에 들어간 것은 두 말하면 무엇하겠는가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식당에 피해를 입어 손님이 없어 장사를 못한다고 하는 사장님에게 어떻게 피해 보상을 해야하는가,
애써 가꾼 농작물 피해는 어찌할까, 그냥 씻어서 드시라고 할 수 있는가,
힘들고 지친 몸은 두번째였다.
보상을 바라는 피해주민들한테 어떻게 합리적으로 보상을 해야 하는지 그 막막했던 순간들은 다시 겪어서는 안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내게 돈만 많이 있으면 이것 저것 해달라는 대로 모든 다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하루 빨리 그 지옥 같은 일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은 겪어 보지 않으면 쉽게 짐작이 어려울 것이다.
아파트 건물 및 부속건물, 상가, 단독주택, 여러 자동차매매단지, 주차된 차량들까지 보상해 줄 곳이 너무 많았다.
내 능력으로는 그 일을 혼자 처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능력 부족인 것을 느꼈다.
우리는 회의 끝에 피해조사 후 확인 되는 모든 것을 현실에 맞게 보상해 줄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다행히 보상금은 시장님의 방침 결정을 얻어 예비비를 사용 승낙 받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확인해서 보상해 주면 되는 일이었다. 피해 확인 그리고 보상액 산정까지 현장에서는 주민들에게, 사무실에서는 민원전화에 이렇게 저렇게 암울했던 3개월 간의 시간이 걸렸다.
6. 보상(補償)
아파트 7개단지 1,200세대, 차량피해 1,121대, 농장물 피해 80세대 등 피해 금액만 2억2,000만원이 넘는다.
아파트 외벽 물청소는 당시 우리지역에 전문업체가 부족하여 수도권으로 확대해야 하는 업체 선정에 어려움을 겪은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한 사건에 대한 피해 금액은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작은 피해액은 겨우 500원부터 큰 액수는 특정한 것을 제외하면 10만원 안쪽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니 피해 건수는 몇 천 건이 되었다. 건건마다 영수증 등 증빙서류 확인하고 첨부하는게 쉽지많은 않았다.
피해 건수가 가장 많았던 차량 피해는 세차 후 영수증을 간단히 첨부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농작물 등과 같이 피해 증빙서류를 구비할 수 없는 건이 대부분이었다.
대기 배출 시설에 대한 환경의무 보험이 가입이 되어 있어 보험청구를 해야할지 포기해야 할지를 국장님, 과장님과 의논했다.
보험 청구시 보험회사에서 원하는 증빙서류를 준비하는 게 문제였다. 나는 포기하고 싶었다.
국장님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최대한 서류를 받아 보험청구 하는 것을 지시하셨다. 사후 감사를 의식하셨던 것 같다.
보상절차가 끝나고 나중에라도 정당한 예산 지출에 대한 혹독한 감사가 있을 것이란 것을 지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보험 청구를 위한 사전 작업에 거의 2개월이 걸렸고, 피해자들한테 건건히 최대한 영수증을 요청하여 이메일로 카톡으로도 접수받았다.
증빙서류인 영수증과 파일을 함께 제출해 달라고 보험사는 주문했다. 사진 대조하고 캡쳐하는 파일 작업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당시 그일을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
피해보상은 3차에 의해 이루어졌다. 차수 별로 보상이 나가면 그에 따른 민원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같은 피해를 입었는데 옆집, 이웃집과 보상금이 다르다는 민원이 대부분이다.
지칠대로 지처있는 상태 정말 모든 걸 내려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 사건도 빨리 잊혀지건만, 힘든 시간은 해가 바뀌고 다음해인 2월까지 5개월여 간 매달렸고 조금씩 조금씩 잊혀지면서 마무리되고 있었다.
7. 휴식(休息)
이제는 이같은 끔찍한 일은 나에게 다시 일어나지 않겠지, 하느님이 진정 계시다면 정직하시고 현명하신 그분은 분명히 희망도 고통도 누구에게나 골고루 나눠 주실 것이리라 믿고 안도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꿈속에 있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린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또한번의 그 끔찍한 사건(2023.04.13 - [창작] - 꿈과 현실 1)이 있기 전까지는...
악몽같은 1년이 조금 더 지나 나는 다른 부서에 근무하면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그렇게 고생해서 제출한 환경보험 청구 건이 확정되어 지급된다는 소식이었다. 너무 기뻤다. 뿌듯했다.
청구한 보험금액은 2억원이 조금 넘었던 것 같은데 세금인지 정확한 명목은 모르겠지만 일정 금액을 제외하고 2억원 가까이 확정되어 지급된다는 내용이었다.
무거웠던 짐을 이제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슴에서 머릿속에서 잔잔한 파도가 되어 계속해서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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