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남한강을 따라 흐르는 시간
그 누구도 짓궂은 세월의 장난을 비껴갈 수 없는 탓일까.
우리 모친께서 늘 자랑하시던 절대미각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은 듯하다.
오늘 아침 김금녀 여사께서 끓여 주신 대구탕은 어딘지 모르게 밍밍했다.
하지만 늦은 밤까지 ‘이슬’에 젖어 거북해진 속을 달래기에는 그만이었다.
배를 채우고 나니, 버릇처럼 일요일 이른 낮잠이 떠올랐다.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누워 눈을 감았다.
가벼운 반주의 여운 때문인지 나른함이 밀려오고, 식곤증이 스며든다.
이럴 때의 낮잠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사랑하는 조카 소연과 누님의 뜻밖의 제안으로
나는 근교 봄나들이에 동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누군가 내게
‘달콤한 낮잠’과 ‘그저 그런 봄나들이’ 중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든을 넘기신 외할머니를 자주 모시고 다니는
조카 소연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니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쯤
아까운 시간을 무의식 속에서 흘려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나를 끌어내 준 것은 다름 아닌 조카 소연이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동행을 결심했고
모친을 모시고 우리는 넓고 편안한 차에 몸을 싣고 길을 나섰다.
여주로 향하는 봄길
2023년 4월 23일 일요일,
구름이 조금 떠 있는 맑은 날이었다.
이날의 목적지는 경기도 여주시.
차를 오래 타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배려하고,
초보 운전인 조카의 상황까지 고려해 정한 근거리 여행지였다.
원주에서 출발해 문막평야를 지나자
남한강의 넉넉한 물줄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더 달리니 어느새 여주에 도착했다.
먼저 강변 유원지에 들렀다.
잘 정비된 산책로에는 봄기운이 가득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가족 단위 상춘객들이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유원지 곳곳에는
붉고 분홍빛의 연산홍과
형형색색의 튤립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꽃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둔치 한편에서는
삼삼오오 자전거를 타며
강변을 시원하게 달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곳의 자전거 도로는 코스별로 잘 가꾸어져 있어
친구들과 함께 특별한 라이딩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천년 고찰, 신륵사로
하지만 평탄한 길도
연세 많으신 모친께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 쉬며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바로 천년 고찰 신륵사.
이동 중 찾아본 ‘신륵사 관광지’는
일반 사찰 소개와는 조금 달랐다.
남한강을 따라
생활체육시설, 박물관, 도자 문화 공간이 어우러져 있고
도자기 축제와 오곡나루 축제가 열리는 곳.
그리고 황포돛배와 수상 레저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 관광지였다.
강변 유원지에서 차로 5분.
우리는 신륵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꽃나무들이 반겨주고
전통찻집 ‘아띠다원’을 지나자
불이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이문은
속세의 번뇌를 벗어나
해탈의 경지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그 문을 지나니
아담한 절이 나무 사이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불이문을 들어서자
남한강을 따라 봄바람이 살랑거린다.
오른편에서는 황포돛배가 관광객을 실어나르고
제트스키가 물살을 가르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 바로 옆에는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신륵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중요한 수상 교통의 중심지였던 곳.
이포나루와 조포나루가 있던 역사 깊은 지역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신라시대 원효대사는
이곳이 훗날 이렇게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될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강월헌에서 바라본 시간
사찰 안으로 들어서니
봉축등이 가득 걸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극락대전 앞에는 다층석탑이 서 있고
그 풍경은 화려하면서도 경건했다.
강변 쪽으로 몇 걸음 옮기자
삼층석탑 앞에 자리한 육각 정자, 강월헌이 나타났다.
이곳은 신륵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장소다.
남한강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660년이 넘는 은행나무와 함께
그 자리에 서 있는 강월헌은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이곳은 고려 말 고승 혜근의 다비 장소이기도 하다.
그의 제자들이 정자를 세우고
그의 호를 따 ‘강월헌’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짧지만 깊은 여행
신륵사는
염불 소리와 수상 레저의 소음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옛것’과 ‘오늘’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공존하는 곳.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은행나무 앞 소원탑에 돌을 얹으며
각자의 바람을 조용히 빌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사이
오랜만에 모친과 함께한 나들이.
그 시간을 만들어준 조카 소연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다.
점심을 사려 했지만
조카의 고집에 결국 그것마저 하지 못했다.
고맙고, 미안하고,
삼촌으로서의 체면이 조금은 서지 않는 날이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남은 생각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곳에 머물다 간 수많은 존재들.
고승이든, 중생이든,
혹은 이름 없는 미물이었든 간에
그들이 머문 시간은
남한강의 흐름 앞에서는
찰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우주 속 작은 먼지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어차피 같은 자리로 돌아갈 인생이라면
그대들이여,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충실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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