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1. 아이를 향한 바람
우리 둘째 아이의 이름은 이은(伊听), 그래서 최이은이다.
작명소에서 정성껏 지은 이름이라 그런지, 예전처럼 대충 붙여지던 이름들과는 달리 한결 세련된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든다. 다행히 본인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이은이라는 이름보다 더 자주 부르는 별명이 있다.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우리는 그 아이를 ‘오롱이’라고 부른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키는 또래보다 큰 편이라 반에서도 손꼽힐 정도다. 키 하나는 부모를 닮지 않은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어릴 때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키 커라.”
아마 모든 부모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데 지금 나는 조금 다른 바람을 품고 있다.
‘이제 그만 커도 좋겠다.’
이 말을 들으면 아내와 큰딸 윤지는 늘 나를 타박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지금 모습이 가장 적당하고, 가장 보기 좋다.
결국 바람이라는 건 이런 것 같다.
한때는 크기를 바라다가, 어느 순간에는 멈추기를 바라게 되는 것.
‘오롱이’라는 이름은 태명이었다.
언니 윤지가 엄마 뱃속의 동생을 신기해하며 붙여준 이름.
그 이름은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졌고, 우리 가족의 가장 익숙한 호칭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람은 같다.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잘 자라주기를.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만은 겪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지만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으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그저 평범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바람이다.
고3 수험생인 큰딸 윤지가
이 시간을 잘 견뎌내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중에서도 조금 더 간절한 바람이다.
2. 친구의 바람
군 복무를 마치고 집에서 쉬던 시절,
나는 한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 호규.
군대에서 만난 그는 나와 성향이 잘 맞았고,
덕분에 힘들었던 군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호규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운동이면 운동, 음악이면 음악.
특히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던 ‘아침이슬’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축구를 하면 늘 스트라이커였고,
공을 잡으면 쉽게 빼앗기지 않는 뛰어난 드리블러였다.
그런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나는 그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청춘은 결국 각자의 길로 흘러갔다.
호규는 도예가의 길을 선택했고,
나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몇 년 뒤 다시 만난 그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기 위해
직접 작가 박경리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박경리가 남자야?”
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 친구는 나보다 한참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있었다.
결국 주례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마음 자체가 이미 대단한 일이었다.
지금 그는 이천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두 아들의 아버지로,
좋아하는 축구를 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 시절 그의 바람은,
지금의 삶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3. 나의 바람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
나는 공무원이 되어 다시 ‘그 이름’을 마주하게 된다.
박경리.
업무로 원주의 토지문화관을 찾았고,
그곳에서 작가의 딸 김영주 이사장을 만났다.
우리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시정 소식지의 타이틀을
‘토지’ 속 작가의 손글씨로 사용하자는 것.
뜻밖에도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조직은 달랐다.
회의 끝에 우리의 제안은 묵살되었다.
비아냥과 무시 속에서
그 일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설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했다.
그 일이 친구에게 전해졌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한 거야.”
4. 불어오는 바람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바란다.
키가 크기를,
멈추기를,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좋은 사람과 함께하기를,
의미 있는 일을 이루기를.
바람은 늘 움직인다.
머무르지 않는다.
한여름 공기가 멈추면 숨이 막히듯,
우리의 삶도 바람이 있어야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 때 ‘바람 쐬러 간다’고 말한다.
어쩌면 바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 곁을 스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스치기를 바라고,
머물기를 바라고,
때로는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바람’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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