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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새소리로 깨어난 어느 날의 기록

by 코드윈 2026. 4. 16.

🌿 아침을 깨우는 작은 오케스트라

언제부터인지 나는 아침이면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다.
한두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알람처럼 나를 깨운다. 새벽 다섯 시쯤이면 참새 몇 마리가 짝을 지어 나뭇가지에 앉아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참새 소리를 ‘짹짹’이라고 표현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문득 왜 늘 그렇게만 생각해왔을까 싶어, 아침에 들은 소리를 떠올리며 나름대로 흉내를 내보았다. 누군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이런 엉뚱한 흉내도 웃으며 이해해주길 바란다.

내 귀에 참새 소리는 ‘삐리삐리, 삐리삐리’에 가깝게 들린다.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울어대면 그 소리가 사방에서 겹쳐져 마치 스테레오 음악처럼 퍼진다.

참새와 비슷한 크기의 박새는 조금 다르다.
‘삐익 삐익 삐익, 삐찍 삐찍 삐찍’—참새보다 음의 변화가 더 많은 느낌이다.

종달새는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삐리삐리 끼리끼리 찌르찌, 삐리삐리 찌르찌르’처럼 길고 복잡한 소리를 이어간다. 글로 옮기려니 어딘가 우습지만, 이 또한 나만의 기록이니 괜찮다.

이렇게 작은 새들의 소리는 마치 작은 관악기 연주처럼 들린다.


하지만 가끔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소리도 있다.
새벽 공원에서 혼자 운동할 때 들으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소리다. 정체를 찾아보니 ‘크낙새’로 추정되는 새였다.

‘따따따따… 따따… 찌익’
간헐적으로 울려 퍼지는 낮고 거친 소리는 혼자 있을 때 꽤 섬찟하다. 작은 몸집으로 이런 소리를 낸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또 하나 익숙한 소리.

‘꾸우욱, 꾸꾹… 꾸우욱, 꾸꾹…’

이 소리는 산비둘기다. 다른 새들보다 덩치가 커서인지 울음소리도 묵직하다. 전선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꿩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특별히 아름다운 소리는 아니지만, 듣고 있으면 여름날 시골집 대청마루에 누워 있는 듯한 정겨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까아악, 찌익 찌익—’

우리 동네의 난폭군, 까치다.
다른 새들이 만들어낸 조화로운 소리 사이에 끼어들어 분위기를 깨곤 한다. 덩치도 크고 소리도 크며, 머리까지 좋아 낯선 사람을 보면 더 크게 울어댄다고 한다. 그야말로 존재감 하나는 확실한 녀석이다.


이렇게 다양한 새들이 매일 아침 나를 깨운다.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와 주택이 밀집한 도시 한가운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풍경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유난히 새소리가 많아졌다.

그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아파트 뒤편의 야산이 개발되면서 새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기 때문이다. 포크레인과 레미콘 같은 중장비는 그들에게 거대한 재앙이었을 것이다. 결국 새들은 먹이와 보금자리를 찾아 인근 주택가와 공원으로 옮겨왔을 것이다.

사람들이 흘린 먹이와 조성된 녹지는 그들에게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을 테니까.


이제 생각해보면, 매일 아침 나를 깨운 것은 새소리만이 아니었다.
‘쿵쾅, 딱딱’ 울리던 공사장의 소리 역시 나를 잠자리에서 밀어냈다. 새들이 나를 깨우고, 중장비가 나를 일으켜 세운 셈이다.

공원에는 새들뿐만 아니라 다람쥐, 청설모, 꿩,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도 점점 자주 보인다. 이들 역시 인간의 개발에 밀려 떠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에게 쫓겨난 존재들이 결국 사람 가까이로 몰려든 셈이다.


한때 이곳은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겨울이면 눈 덮인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창밖에는 회색 건물들만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는 반갑지만, 머지않아 이곳에서도 그들이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도시의 발전도 좋고 공원의 조성도 좋지만,
자연이 숨 쉴 수 있는 공간만큼은 조금 더 남겨두었으면 한다.

사람과 새, 그리고 여러 동물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
그런 곳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는 여전히 새를 좋아한다.
아침에 들려오는 ‘삐리삐리’ 참새 소리에, 오늘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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