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겨울아, 가지 마라
한겨울 이맘때가 되면 어린 시절,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구슬치기, 딱지 따먹기, 팽이치기를 하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특히 눈 오는 날이면 그 기억은 더 또렷해진다.
손과 얼굴에 흙이 묻어 새까매지고, 튼 살에 피가 맺힐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그 시절. 눈이 내리기라도 하면 철부지였던 우리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천둥에 개 뛰어들듯’ 마구 뛰어다녔다. 입을 크게 벌려 눈송이를 하나라도 더 받아먹으려 이리저리 흩날리는 눈을 쫓아다니던 개구쟁이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뜨겁고 끈적한 여름보다는, 찬바람이 쌩쌩 불고 서리가 내리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을 더 좋아했다. 불혹을 한참 지나 지천명도 반을 넘긴 지금까지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겨울은 늘 기다려지고, 오면 천천히 지나가길 바란다.
물론 이런 말을 들으면 에너지 정책을 고민하는 사람이나 겨울철 전기요금에 민감한 가정주부들, 특히 우리 어머니께서는 못마땅해하실지도 모른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오랜만에 눈이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었다. 흔히 8년에 한 번꼴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평균일 뿐 16년, 24년, 혹은 그 이상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젊은 청춘들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더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처럼 겨울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연말을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 설렘은 특별하다.
◈ 2. 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문득 궁금해졌다. 겨울철, 눈은 어떻게 만들어져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까.
요즘은 손안의 작은 컴퓨터로 무엇이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알아보니 원리는 의외로 단순했다. 지면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100m마다 약 0.5~0.6도씩 기온이 떨어지고, 높은 구름 속의 수증기가 얼어 결정이 된다. 그렇게 무거워진 얼음 결정이 중력에 의해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 바로 눈이다.
이 정도의 기초적인 원리만 알아도 ‘대충’과 ‘간단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충분히 궁금증이 풀린 셈이다.
◈ 3. 눈이 ‘온다’는 말
높은 상공에서 만들어진 얼음 결정이 떨어지는 현상인데, 우리는 ‘눈이 떨어진다’가 아니라 ‘눈이 온다’고 말한다. 비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멀리 있던 것이 가까워진다는 이유로 ‘온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라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번개는 ‘온다’고 하지 않고 ‘친다’고 하며, 우박은 ‘내린다’고 한다. 호랑이는 ‘온다’가 아니라 ‘나타난다’고 하고, 전염병은 ‘창궐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유독 눈과 비는 ‘온다’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가 좋아하고 기다리는 것들에 ‘온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장에 갔던 엄마가 오고, 회사에 갔던 아버지가 오고, 군대 간 아들이 제대해 돌아온다. 실연한 사람은 떠난 연인이 다시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고 보면, 눈을 좋아하고 겨울을 기다리는 마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눈이 너무 많이 내리면 ‘눈이 몰아친다’고도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은 원하지 않을 때의 상황일 뿐, 본래 우리가 눈을 바라보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비는 어떨까. 나는 비 오는 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비가 온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오래전 농경 사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었기에, 조상들은 하늘에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래서 ‘비’ 또한 기다리고 바라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이슬비, 봄비, 안개비, 꿀비, 여우비… 이름만 보아도 비에 담긴 감성이 느껴진다. 감수성이 풍부한 우리에게 비 역시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 한국 사람 사절? “노매너는 오지 마세요”
작년, 친구들과 함께 동남아의 한 해변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의 여행은 설렘과 동시에 묘한 긴장감도 있었다.
여행 자체는 무사히 잘 마쳤지만, 돌아온 후에도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불편함이 있다.
현지 한 식당에서의 일이었다. 팁 문화가 있는 나라였기에 적당한 팁을 주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행 중 한 사람이 종업원들을 불러 세워 마치 어린아이에게 세뱃돈을 주듯이 팁을 나눠주는 모습은 보기 불편했다.
좋게 보자면 ‘수고에 대한 보상’이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것도 고작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주면서 말이다. 더 안타까웠던 건 그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제지하고 싶었지만, 여행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선택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다.
팁 문화의 기원은 다양하지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9세기 중반 상류층이 웨이터에게 수고비를 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반면 유럽에서는 그것을 모욕적인 행위로 보며 점차 사라지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떠나, 중요한 것은 태도다. 우리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개인이기도 하다. 과거 전쟁과 가난 속에서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던 시절을 겪었던 민족이라면, 더더욱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해변, 시원한 맥주, 멋진 풍경 속에 있다면 그에 어울리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외적인 풍경만이 아니라, 내면 또한 그 풍경처럼 맑고 품위 있어야 한다.
혹시 그날의 행동이 단순한 실수였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이 술자리의 웃음거리나 자랑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그 아름다운 해변의 순박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노매너인 사람은 오지 마세요.”
◈ 마무리
높은 도덕성을 갖춘 사람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는 작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눈이 오고, 비가 오고,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오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배려와 따뜻함이 ‘찾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가자지구를 비롯한 모든 분쟁 지역에도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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