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30 바람은 머무르지 않는다 바람1. 아이를 향한 바람우리 둘째 아이의 이름은 이은(伊听), 그래서 최이은이다.작명소에서 정성껏 지은 이름이라 그런지, 예전처럼 대충 붙여지던 이름들과는 달리 한결 세련된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든다. 다행히 본인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그런데 우리 가족은 이은이라는 이름보다 더 자주 부르는 별명이 있다.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우리는 그 아이를 ‘오롱이’라고 부른다.이제 초등학교 6학년.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키는 또래보다 큰 편이라 반에서도 손꼽힐 정도다. 키 하나는 부모를 닮지 않은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어릴 때는 늘 같은 말을 했다.“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키 커라.”아마 모든 부모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그런데 지금 나는 조.. 2026. 4. 16. 옛날 도시락과, 옛날 귀신 그리고 AI 미래 🍱 추억의 도시락과, 그 시절의 귀신들중고등학교 시절, 우리 아이들 굶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어려운 살림 형편에도 어머니께서 정성껏 챙겨 주시던 도시락이 떠오른다.당시 연세 지긋하신 어른들은 그것을 일명 ‘변또(벤또)’라고도 불렀다.학교 갈 때면 책가방 속 도시락은 늘 큰 골칫거리였다.어려운 시절, 주된 반찬은 김치였는데 도시락 밑에 깔아둔 김칫국물이 새어 나와 가방 속 교과서 모퉁이에 빨갛게 스며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시간이 지나면 김칫국물이 밴 교과서 모퉁이는 보기 흉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때마다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 없어 애써 닦고 햇빛에 말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모양과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살림이 좀 나은 집 아이들부터 동그란 ‘.. 2026. 4. 16. 그날, 잿빛 악몽을 넘어서 1. 그날의 기억그날의 사건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그럼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날만큼은 분명 장난을 쳤다.2018년 9월 29일, 토요일.사건이 터지기 바로 전날이었다.인천에서 친구가 내려왔다.오랜만에 모인 우리는 반가움에 취해 늦은 밤까지 술자리를 이어갔다.애주가인 나에게도 그날은 유독 과했다.새벽녘, 몇 번이나 속이 불편해 잠에서 깨곤 했다.그리고 다음 날,9월 30일 아침.8층 방 창문으로 가을 햇살이 스며들었다.아파트 앞동 옥상에 가려 쪼개진 빛이었지만, 그 따뜻함은 충분했다.하지만 밤의 숙취와 뒤섞인 내 정신은 그 빛조차 귀찮게 느껴졌다.부시시한 눈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부재중 전화와 알림이 쌓여 있었다.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2026. 4. 16. 만남과 이별, 그리고 다시... ♡ 만남과 이별, 그리고 다시…1990년, 그해의 4월은 유난히도 따뜻하고 포근한 봄이었다.비스듬히 열린 학원 강의실 창밖으로, 조금 떨어진 작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던사랑일뿐이야의 감미로운 멜로디.‘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그 노랫가사는 그해 봄날의 싱그러움 위에 촉촉한 감정을 얹어주었고,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우리 같은 청춘들에게는조용한 위로처럼 스며들고 있었다.내성적인 성격 탓에 늘 강의실 맨 뒷자리를 지키던 나는,그날도 일찌감치 수업 준비를 마치고그 노랫소리에 기대어 지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였다.강의실 문이 열릴 때마다,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문이 열릴 때마다 괜히 시선을 들어 올리고,괜히 심장이 한 번씩 더 뛰었다.그녀, 영주.가슴을 울리는 멜로디에 잠겨턱을 .. 2026. 4. 16. 촌스러움이 아니라, 클래식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TV 드라마를 보시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늘 눈시울을 적시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 뒤에서 “뭐 때문에 또 우세요? 그게 그렇게 슬퍼요?” 하며 놀리듯 물어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내 나이 이제 50대 중반. 요즘의 나는, 어릴 적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처럼 감정 조절이 쉽지 않다. 멜로 영화는 물론이고, 무지막지하고 폭력적인 영화에서도 눈물이 난다. 예전에 내가 어머니를 놀렸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혹시 내 뒤에서 나를 놀릴까 싶어 몰래 눈물을 감추려 애쓰기도 한다.세련되게 말하면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센티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어린 시절의 그 감수성 풍부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톡 하.. 2026. 4. 16. 10년의 시간, 더 깊어진 풍경 - 무실세영리첼2차의 가을 2015년, 원주 무실동에 준공된무실세영리첼2차 아파트.어느덧 열 번의 해가 바뀌었습니다.입주 당시 초등학생이던 첫째와 아직 어린 둘째를 키우며, 직장 생활까지 병행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작 내가 사는 이 공간을 천천히 바라볼 여유는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어느 쌀쌀한 가을 아침, 뒷산 산책길에서 우연히 내려다본 우리 아파트는 낯설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이었습니다.잘 정비된 조경은 마치 캔버스 위에 정성스럽게 색을 입힌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울긋불긋 물든 산책로는 늦가을의 한 폭 풍경화 같았습니다.하지만 입주 당시만 해도 이곳은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듬성듬성 심겨 있던 이름 모를 작은 나.. 2025. 11. 20.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