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의식 영역 연구의 장을 넓힌 프로이트는 과거의 기억 같은 잠재적인 요소가 꿈에서 표출된다고 주장했으나, 현대의 꿈 연구에 따르면 꿈의 내용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주로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전쟁이 막 지나갔다면 모를까 싶은 몹시 어수선하고 적막하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 갑자기 집 밖이 시끌벅적하다.
나는 직장에서 맡은 업무가 힘들었는지 천근만근만 몸을 겨우 추스리고 잠에서 막 깨어 일어나 문 밖으로 향했다.
짐작한 대로 어디에서 나타난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명이 몸 싸움은 벌어진 것 같지 않았지만 그저 삼삼오오 모여 자기 주장을 늘어세우느라 바쁜 모양새다.
이런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것을 두고 난장판이라고 하면 그 말이 맞을 것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궁해 할 생각도 않았지만 왜 무슨 이유로 이 사람들이 화를 내며 다투고 있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서로 언성이 오가며 들리는 소리에서 내용을 짐작하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그들의 공통된 주장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두고 자기 것이 남의 것하고 서로 바뀌었다고 큰 소리로 앞다퉈 소리지르는 형국이어서 누군가가 중재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한쪽에서는 "내 꺼야, 우리꺼랑 바뀌었어, 그것이 우리꺼야" 다른 한편에서는 "아니야, 그게 우리꺼야" 정신없어 나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 아침에 거실 싱크대 쪽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나서 잠이 깼다.
자주 이런 잡다하고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지라 이 날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생각으로 힘겹게 출근 준비를 마치고 매일 매일 그랬듯이 그야말로 무거운 발걸음을 직장으로 향했다.
직장까지는 집에서 나와 걷기 시작하면 성질이 조금은 급한 우리 애들 엄마 같으면 25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지만 나는 꼭 40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걷는다.
나는 걸음이 빠르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그 곳에 뭐 좋은게 있다고 빨리 가겠는가 하는 것이 최근의 내 직장생활에 대한 푸념이었다.
그 날도 터덜터덜 느린걸음을 애써 일하는 곳인 시청 쪽으로 재촉했다.
시청 앞에 다다르니 젊은 친구들은 활기에 찬 모습으로 출근하며 이야기 하는 이들이 있고,
또는 내 나이 되어 보이는 좀 그러그러한 사람들은 지금의 내 분위기랑 별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게 기운이 없고 풀이 죽어 보인다.
동병상련이라 여기며 그저 재미있게 느껴진다. 시청 앞이 보이고 점차 사람들도 많아지기 시작하자 나는 좀 더 시간을 단축하려 빠른 발걸음을 하면서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데 그 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같은 팀에 같이 근무하는 p사원이다. 출근시간은 조금 남았는데 이 시간에 나한테 전화할 일이라고는 없는데 이상하다.
'오늘 쉬려나, 연차내려고 미리 얘기하려는 건가'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이 쪽으로 빨리 오셔야 될 거 같아요" " 왜 그러시는데요?" " 글쎄 빨리 오셔야 될 거 같아요, 여기 난리예요, 시신이 바뀌었대요..
"어쩌다가요, 큰일났네, 큰일..." p사원과 나는 순간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 당황하고 두려웠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알았어요,
과장님한테 보고하고 빨리 갈께요" 전화를 끊고 속으로는 '침착하자, 침착하자' 되내었지만 발걸음은 힘이 없어 빨리 내딛을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후들거리는 몸을 추스러 사무실로 향해 과장님께 보고했다.
사장님 회의 시간보다 이 사건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셨는지 같이 현장에 나가 보자고 먼저 말을 다급히 꺼내셨다.
나는 차를 운전하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고, 과장님도 "어떻하지, 어쩌다 그렇게 됐나, 이를 어쩌나" 를 한숨과 함께 연이어 되풀이 했다.
현장에 막 들어설 때 예상했던 것 보다는 약간의 정막감이 흘렀지만 나는 그것이 폭풍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함이라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두려움을 뒤로하고 현장 (화장장)사무실에 들어섰다.
이 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어떤 생각도 어디서 얘기도 할수 없는 일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꿈속일지라도 피하고 싶었던 일 어제밤 꿈속에서 일어났던 그 상황이 그대로 거의 똑같이 재현되는 듯했다.
아니 등장하는 인물들만 달랐지 내용은 그와 상이하지 않았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꿈속에서는 나는 방관자였지만 여기 현실은 나와 우리가 바로 주인공이란 것이다.
분노에 차 우리를 잡아 먹을 것같은 여러 유족들에 둘러쌓여 우리는 몇 시간을 대역 죄인처럼 휘둘렸다.
그것은 마치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참호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벌벌 떨고 있는 가엽은 병사들과도 같았다.
우리는 넋을 놓고 사죄하며 해결책이 꼭 있었으면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하며 2시간 이상을 사람들에 둘러쌓인 채 빈털털이로 남은 영혼마저 쏟아내야만 했다.
조상을 잃어 버릴지 모른다는 유족들의 심정은 어떨 것이며 그 일을 일으킨 당사자인 우리들은 어쩔 것인가.
그 때의 그 비참한 사건은 먼 훗날이 될지 모르지만 내가 그곳에 다시 가게 되는 날(꼭 먼훗날이 되기를 바란다)까지 잊지 못할 혹독한 가슴아픈 기억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몇해 전에 겪었던 일이었다. 追募公園을 힘겹게 개원하여 운영 후 1주일 만에 일어난 사건이다.
어느 한 직원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어찌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곳에는 30여 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며 나는 거기 책임자로 있었다. 모든 것이 나의 업보였을 것이다.
5년 남짓 되었을 일을 오늘 다시 떠올리며 앞으로 내 인생에 남아있는 헤쳐나가야 하는 어려운 일에 대한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5년전 그 당시에 추모공원에서 장례를 치르셨던 유족분들에 대해서는 오늘 다시 한번 사과드리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 슬프고 가슴아픈 일을 겪으신 분들한테는 너무나 황당하고 분통터지는 일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사건의 전말은 숨기고 싶다)은 천만 다행으로 잘 해결되었다.
cctv란 최신 장비 덕분에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하늘이 가엽이 여겨 스스로 알아서 한 일은 없지만 하느님이 우리를 도와주신 덕분이었다.
그 때 같이 근무했던 모든 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사건이 마무리 되면서 나는 과장님과 함께 차를 타고 귀청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몇번이나 길게 내 쉬었다.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날의 꿈 얘기를 얘기했다.
"그랬으면 사무실로 오지말고 빨리 현장으로 가서 보고 그러지 그랬어, 참 으이구.."
짙은 눈썹을 미간 아래 큰 코 한 가운데 애써 모으고 특유의 볼멘 소리로 톡 쏘아 붙였다.
우리는 서로 씁쓸한 미소와 함께 큰 숨을 들이키며 험난한 전투를 벌인 마냥 그 위험하고 험난했던 곳을 뒤로하고 홀가분히 빠져나왔다.
그 이후에 나는 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곤했다.
내맘대로 할 수 없는 일 아무튼 '좋은 일 대박나는 꿈'만을 꾸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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