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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꿈이 먼저 알린 그날의 난장판

by 코드윈 2026. 4. 17.

무의식의 영역을 연구한 프로이트는 꿈이 과거의 기억과 같은 잠재된 요소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꿈은 우리의 일상과 훨씬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현실의 경험이 꿈속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치 전쟁이 막 끝난 듯 어수선하고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집 밖이 시끌벅적해졌다. 나는 직장에서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채,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문 밖으로 나섰다. 예상했던 대로, 어디서 모였는지 모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몸싸움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할 겨를도 없었지만, 그들의 언성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은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서로의 물건이 바뀌었다며, “내 거다”, “우리 거다”를 외치며 다투고 있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소란 속에서 나는 그저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 거실 싱크대 쪽에서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지며 잠에서 깨어났다.

이런 잡다하고 허무맹랑한 꿈은 자주 꾸는 편이라, 그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힘겹게 출근 준비를 마치고, 늘 그렇듯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직장까지는 빠르게 걸으면 25분이면 충분하지만, 나는 늘 40분 정도를 잡고 천천히 걷는다. 걸음이 느린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곳에 뭐 좋은 게 있다고 그렇게 서둘러 가겠는가’라는 생각이 요즘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터덜터덜 시청 쪽으로 향했다. 시청 앞에 다다르자 젊은 직원들은 활기찬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출근하고 있었고,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람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풀이 죽어 있었다. 묘한 동병상련을 느끼며 그 모습이 씁쓸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발걸음을 조금 재촉하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데,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같은 팀의 P 사원이었다. 아직 출근 시간이 남았는데 이 시간에 전화라니, 이상했다.

‘연차라도 쓰려는 건가…’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이쪽으로 빨리 오셔야 될 것 같아요.”
“왜요?”
“일단 빨리 오셔야 돼요… 여기 난리예요. 시신이 바뀌었대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는 당황과 두려움을 애써 감추며 “알았어요. 과장님께 보고하고 바로 갈게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속으로는 ‘침착하자, 침착하자’를 되뇌었지만, 발걸음은 마음처럼 빨라지지 않았다.

사무실에 도착해 과장님께 상황을 보고하자, 시장님 회의보다 이 일이 더 급하다고 판단하셨는지 곧바로 함께 현장으로 가자고 하셨다. 차를 운전하는 내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과장님 역시 “어쩌다 이런 일이…”라는 말을 한숨과 함께 반복하셨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예상과 달리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폭풍 전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화장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전날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이 그대로 현실에서 재현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등장인물만 다를 뿐, 상황은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꿈속에서는 방관자였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분노에 찬 유족들에게 둘러싸여 우리는 몇 시간을 죄인처럼 서 있어야 했다. 그 상황은 마치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병사와도 같았다. 우리는 넋을 잃은 채 사죄했고, 어떻게든 해결되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렸다.

두 시간 넘게 이어진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그들의 분노를 받아내야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그마저도 제대로 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유족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그 분노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 사건은 몇 해 전, 추모공원을 개원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 직원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당시 3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고, 나는 그곳의 책임자였다. 모든 책임은 결국 내 몫이었다.

다행히 사건은 CCTV 덕분에 해결되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듯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지금도 깊이 감사하고 있다.

사건이 마무리된 후, 과장님과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몇 번이나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전날 꾼 꿈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으면 바로 현장으로 갔어야지, 사무실은 왜 들렀어…”

과장님은 특유의 투덜거리는 말투로 나를 나무랐다. 우리는 서로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큰 전투를 치르고 돌아온 사람들처럼 긴 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 나는 꿈에 대해 조금은 조심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앞으로는 그저
좋은 일만 가득한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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